입력 2014.10.10 00:25 / 수정 2014.10.10 00:39

"변전소 못 들어온다" 여주·양평·광주·이천 시끌

후보지 발표에 주민 거센 반발
"수도권 규제까지 엎친 데 덮친다"
'제2 밀양사태'로 번질 우려 커져
한전, 주민과 보상문제 논의키로

변전소 설치에 반대해 길을 막고 현수막을 내건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 모습. 한국전력에서 현장 실사를 위해 접근하지 못하도록 노인회·부녀회원들이 지키기도 한다. [사진 산북면변전소반대위]

9일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 마을회관 앞 진입로. 노랑·검정 무늬의 세모꼴 철제 바리케이드와 액화석유가스(LPG)통 3개가 길을 막고 있다. 그 옆에는 ‘각종 규제로 한 번 죽고 변전소로 두번 죽네’ 등이 적힌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마을에서 300m 떨어진 곳이 지난 7월 전력공급 시설인 ‘신경기변전소’ 후보지로 정해지면서 주민들이 내걸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바리케이드는 한국전력이 현지 실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 이곳 주민들은 또 다른 후보지인 금사면 전북리 주민들과도 연대해 여주시청 앞 등지에서 석달째 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엔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서 시위를 했다. 정석대 반대투쟁위원장은 “이사 온 외지인이 주민의 40% 이상일 정도로 환경이 좋은 곳인데 변전소가 들어서면 마을 전체가 황폐화된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수도권에서 한전과 주민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신울진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경기도 남동부와 서울 일부지역 180만 가구에 공급할 신경기변전소 설치를 놓고서다. 여주시 산북면·금사면을 비롯해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광주시 곤지암읍 삼합리, 이천시 마장면 관리 등 한전이 후보지로 점찍은 5곳 주민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었던 최종 후보지 선정이 보류된 상태다.


 한전은 2019년 말 신경기변전소를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지난해 5월 여주·광주·이천시와 양평군 등 경기 남동부 4개 시·군이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꾸렸다. 올해 7월까지 1년 2개월간 6차 회의를 했으나 주민은 물론 시·군 반발에 부닥쳤다. 여주시는 “각종 수도권규제로 개발이 제한된 지역에 대규모 고압 변전소까지 들일 수는 없다. 보상 논의조차 않겠다”고 맞섰다. 조억동 광주시장은 직접 한전을 항의 방문했고, 시의회는 ‘변전소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천시와 양평군 입장도 비슷하다.

 신경기변전소는 송전탑 문제도 겹쳐 있다. 변전소 주변에는 고압 송전탑이 필수다. 신경기변전소가 세워지면 주변에 765·345㎸ 고압 송전탑 수십 개가 들어서야 한다. “후보지가 어디가 되든 ‘제2의 밀양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양평군 고광용 비상대책위원정은 "(양평엔) 이미 신가평변전소로 이어지는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가고 있다”며 "그런 마당에 송전탑을 더 세우면 양평은 어쩌란 말이냐”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 7월 8일 일단 여주시 산북면 후리 등 5개 지역을 후보지로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최종 후보지 결정은 일단 미루기로 했다. “변전소 및 송전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변전소 후보지에 한전 직원이 상주하는 사무실을 설치하고 주민들과 보상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충청지역에 설치할 ‘신중부변전소’ 갈등도 이렇게 풀었다. 지난해 7월 충북 청원으로 최종 입지가 선정된 뒤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하자 보상 등을 놓고 3개월 넘는 설득을 벌여 OK를 받았다. 한전 관계자는 “신경기변전소 역시 주민 동의를 받아 최종 후보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호진 기자